서울국제도서전 2023 후기
출판계가 살아남는 방법 - 서울국제도서전 2023 후기
어제, 그러니까 6월 17일에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왔다. 홍보대사 관련해서 잡음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결국은 어떻게든 해결이 된 모양이고, 예전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행사라 일단은 참석. (알아봐 주시고 예매까지 해주신 아내님께는 한없이 깊은 감사와 사랑을)
생각보다 많은 출판사들이 참석했다는 것, 그리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대형 출판사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출판사들이 참석하고, 구하기 힘든 도서들도 많이 구할 수 있었다고는 한다. 도정제를 싫어할 한 가지의 이유가 더 생긴 듯.
출판사마다 각자의 개성을 살린 컨셉도 좋았고, 책만이 아니라 책커버나 책갈피, 책 주머니 같은 관련상품들, 그리고 막걸리나 식물성 고기...같은 비관련 상품들도 모여있는 부스 구성은 참 좋았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몰리는 곳과 몰리지 않는 곳이 어느 정도 확연히 구분이 되어 있어서, 사람과 부딪히기 싫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사람이 몰리는 곳에 대한 정리가 조금 더 되었으면 했다. 어떤 컨벤션이듯 사람이 몰리는 곳과 몰리지 않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바닥에 화살표라던지 동선 표시를 해 놨다면 사람들이 부딪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올해의 주빈국이 사르자라고 들었는데, 그나마 사르자만 입구에 배치를 해 놓고 다른 나라들은 저-기 뒤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 배치를 해 놔서, 안그래도 휑한 곳이 더 휑해지는 효과를 연출했다. 인기가 있건 없건 일단은 사람들이 눈길을 한 번이라도 줘야 참석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행사 자체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내년에도 참석을 고려하지. 일단 올해 왔던 사람들은 내년에는 참석을 하지 않을 것 같고...인기있는 부스 사이에라도 배치를 했다면 예의상으로나 효과상으로나 더욱 국제도서전이라는 이름에 충실해 보이지 않았을까.
또 다른 감상은 일부나마, 사람들이 몰리는 것으로 출판계의 트렌드를 짚어볼 수 있었다는 것. 아래는 간략한 감상.
1. 장르소설의 상대적인 약화
- 장르소설의 트렌드가 웹소설 쪽으로 옮겨갔는지, 장르소설을 다루는 출판사들은 행사장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느낌이었다. 라이트노벨류를 많이 다뤘던 대원은 슬램덩크 코인을 제대로 타면서 다른 라인의 소개를 상대적으로 줄인것으로 보이며, 그 이외에는 소미미디어 정도만 눈에 띄었다.
그에 비해 현실을 무대로 한 소설, 혹은 수필을 주로 다룬 출판사들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도서전에서의 참가자들의 취향은 어느 일정한 트렌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따라서) 해외 번역서들의 비중 역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여전히 의욕적으로 SF, 호러 등의 비주류 장르들을 내고자 하는 출판사들 역시 있었다. #구픽 같은 경우는 존 스칼지의 상호의존성단 시리즈를 냈었고, 장르 문학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도 내고 있다 (몇 권 가져오고 싶었는데 가방이 무거워서 포기했다. 언제든 구해 볼 작정이다) #크로노텍스트 는 짧은 시간 부스 구경을 했는데, 담당자 분의 열정이 너무 느껴져서 책 얘기라도 몇 마디 해볼까 했는데 다른 분이랑 말씀하시고 계시길래 발길을 돌렸다. #아작 은 익스팬스 시리즈와 Poppy War 시리즈를 용기있게 낸 출판사라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후속 출간을 물어보니 곧이라고만 하셔서, 왠지 행간에서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아쉬웠다. 응원의 의미에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코니 윌리스의 자선집을 한 권 구입.아이러니한 것은 예전(에도 비주류였던) 판타지 장르에 비해 더 비주류였던 SF 그리고 호러 장르가 오히려 판타지에 비해 그 주목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판타지가 이제 주류가 되어버려 그 신선함을 잃어버린 것인지, 오히려 색다른 느낌을 주는 저 두 장르가 (이 도서전에서만큼은) 꽤 눈에 띄인다는 것이 신선했다. 이윤하의 작품이 계속 출판되는 것도 그렇고, 판타지 일색이었던 해외 장르소설이 그 지평이 넓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팔리는 건 다른 문제지만. 브랜던 샌더슨의 미스트본 시리즈도 그렇고, 양귀비 전쟁 (Poppy War) 시리즈도, 익스팬스 시리즈 역시 해외에서는 비평과 세일즈 양 면에서 성공을 거둔 시리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후속편을 내지 못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그 이외로 나누어지고 있는 일본 미스테리 소설 출판의 전례, 트렌드를 타지 못하는 장르 및 작품군에 대해서는 무서울 정도로 관심이 없는 국내 독자들의 성격, 해외 작가 하나 낼 돈이면 국내 작가 네 다섯을 낼 수 있는 비용을 본다면, 장르소설 출판사들은 당분간은 국내 작가들의 발굴과 출판에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를 해 보고 싶다...는 게 내 예전의 꿈 중 하나였고, 나이가 들어서라도 언젠가는 시도를 해 보고 싶다. 그런 나에게 이런 자리는 내 꿈의 일부를 비춰주는 자리이자, 매우 힘들어서 그냥 회사 다니기를 잘했다..하지만 응원만큼은 계속 하고 싶게 했다. 가장 큰 응원은 책을 사는 거고, 좋은 평을 남겨주는 것이 아닐까.
결론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재미있는 행사였다. 내년에도 기회가 닿는 한 꼭 갈 것이고, 더 많은 장르를 다루는 더 많은 출판사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표를 사주신 아내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멋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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