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홈런 - [귀족탐정 貴族探偵] by 마야 유타카
신슈의 산장 속, 문이 잠겨버린 밀실 상태의 방 안에서 회사 사장의 시신이 발견된다. 수사하고 있는 경찰 앞에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 이름하여 [귀족탐정]. 경찰 상부와 강력한 커넥션을 가진 그는 집사, 메이드 등 하인들을 이용해 수많은 난사건을 해결해 간다. 참신하고 정교한 트릭과 강렬한 캐릭터가 융합한 전례없는 디텍티브 미스테리, 여기에 탄생!
언젠가 일본 갔을 때 하드커버 원서로 사놓았지만 역시 잊혀졌던 책들 중 한 권이다. 아마도 이유는 다른 마야 유타카의 작품들이 아직도 많이 쌓여 있었다는 것... 은근히 이 작가의 책은 손이 선뜻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날개달린 어둠]이나 [애꾸눈 소녀] 같은 작품들의 독기가 강해서였을까, 상당히 읽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읽기 전과 후에는 가벼운 작품을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다 보니 다른 책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잦다. 막상 읽어보면 재밌게 읽는데 말이지...
마야 유타카는 탐정이 사건을 밝혀낸다라는 오소독스한 탐정물 미스터리 소설에 계속 도전해왔던 작가이다. [날개달린 어둠]에서의 충격적인 전개도, [애꾸눈 소녀]의 후반부 반전도, 메르카토르가 등장하는 단편집 시리즈도, 탐정이 추리해낸 결과가 수 많은 해답들 중에서도 유일한 해답이 된다라고 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흔들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실험해냈다. 초반에는 무리수라고 생각되는 파천황적인 전개도 많았지만, 점점 업력이 쌓여가면서 타율을 쭉쭉 올려나가고 있는 작가다 (사실 이제는 어엿한 중견 작가 아닌가)
도중에 도망치는 탐정, 진실이 뭔지 개뿔도 신경안쓰는 탐정을 등장시켰던 마야 유타카는 이 작품에서는 아예 한 술 더 떠, 탐정이 되기 위한 기준 자체에 도전한다. 귀족탐정은 조사와 추리, 게다가 범인 지적까지의 모든 과정을 유능한 하인들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명탐정으로서의 명성만 받아먹는다. 조사와 추리는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노동이니만큼 노동은 하인들에게 일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인데.. 안락의자 탐정도 있고, 컴퓨터에 단서를 입력해서 통계로 범인 추리하는 탐정, 산책을 해서 좌뇌를 자극하여 추리하는 탐정, 단서가 모두 등장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진상을 깨닫는 탐정까지 나오는 세상이니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한다. 당연히 (귀족탐정과 하인들을 제외한) 주변 등장인물들은 기가 막혀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코미디도 웃음 타율이 높다. 이런 장면도 쓸 수 있는 작가였구나.
독기가 꽤 빠진 작품이라 쭉쭉 읽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절판된 게 아쉽지만, 중고로라도 구해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시리즈 2권도 나왔다고 하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구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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