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상의 원초적인 공포 -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by 조지 밀러

그래서 꼭지는 무사했던가 (스포일러 있음)

디멘투스를 억압자로서의 남성으로만 해석한다면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재미를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임모탄 조와는 또 다른 광기를 자랑하는 그는 퓨리오사에 대한 반동인물만이 아닌, 세계의 또 다른 공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Dementus의 어근인 Dement는 광기라는 뜻 이외에도 망각, 섬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망각이라는 존재는 매드 맥스 세계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워보이들의 유언은 "나를 기억해줘"다. 퓨리오사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잊지 않기 위해 팔에 지도를 새긴다. 히스토리 맨은 혼란속에 잊혀질 과거의 유산을 몸에 새겨넣으며, 그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는다. 퓨리오사가 복수를 완수하기 전, 집착하듯 물어보는 질문은 "나를 기억하는가?" 다. 이 시대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공포는 잊혀지는 것이다. 목숨의 가치가 너무나도 미약한 야만의 시대에서,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죽어 사막 한 구석에 내팽개쳐지는 것.

그런 세계에서 망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디멘투스는 강력한 힘을 얻는다.  그 이름처럼 그는 무언가에 집착하다가도, 다음 장면에서는 그 사실 자체를 깡그리 잊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린 플레이스를 찾기 위해 처절한 고문을 하더라도 시타델이라는 매력적인 미끼가 생기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가고, 기억하지 못할 망정 삶의 여러 국면에서 퓨리오사에게 집착한 그는 다음 순간 그 사실을 잊는다. 

망각을 다루기 때문에 그는 강력하다. 망각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만든다. 그에게 있어 타인은 소모품이며, 그로 인해 생기는 공포심으로 군림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권력은 쉽게 허물어진다. 그의 동료는 자신의 부하를 소모품으로 쓰는 디멘투스에게 분노하여 그를 배신하고, 그가 지배한 무기 농장은 허접한 통치 때문에 반란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그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도망친다. 하지만 그는 구차하지 않다. 망각이 강력한 힘을 가진 시대에서 그는 다시 또 부활할 수 있으니. 이런 면에서 디멘투스는 이모탄 조와 좋은 대구를 이룬다. 이모탄 조가 종교와 규율을 통해 통해 스스로를 신격화했다면, 디멘투스는 원초적인 공포를 통해 타인을 지배한다. 


이런 그를 이기는 방법은 망각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퓨리오사가 소중하게 여기던 지도는 그녀가 스스로 팔을 잘라냄에 따라 상실되었지만, 기억을 포기함으로서 - 망각을 다루는 힘을 손에 넣으면서 - 그녀는 마침내 디멘투스보다 우위에 선다. 반대로 디멘투스는 퓨리오사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동안 도망쳐 다니며, 퓨리오사를 기억하는 순간 그녀에게 맞서게 된다. 기억하는 순간, 무릎은 꿇었을지언정 그는 퓨리오사에게 다시금 대등하게 맞선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저주하는 망각에게 어울리는 최후는, 그 자체를 세상에서 잊혀지게 만드는 것이다. 디멘투스의 최후를 여러 버전으로 보여주는 이유는, 그런 수 많은 가능성 안에 디멘투스라는 인간을 매몰시키고 잊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결국 타인을 위한 비료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강함을 손에 얻은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도피행을 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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