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Man in the Dark] by 폴 오스터

공포영화 맨인더다크 아님

난 폴 오스터에게서 외로움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의 주인공들은 무력하다. 세상 속에 혼자 놓여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고, 때로는 성공을 이루기도 하지만 곧 빼앗겨 버린다.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기적도 사춘기가 시작되며 덧없이 사라져 버리고 (공중 곡예사), , 목표물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집요함도 어느새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며 (뉴욕 3부작), 우연과 함께 상속받은 거액의 돈 역시 우연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달의 궁전). 운명, 시간, 그리고 우연이 만들어낸 커다란 파도 앞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는 모래성과도 같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그들은 다시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부와 명예는 사라지더라도 이야기는 남았으며, 그들은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손 안에 들어왔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어도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물질적으로는 비워졌으나 정신적으로는 채워져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들은 홀로 남았지만 더 이상 외로움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오지만 그 도중에 얻은 가치가 의미를 잃지는 않는다. 희망이라는 유치한 단어는 오스터의 손에서 진실성을 발휘한다.

이 작품은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읽은 오스터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은퇴한 문필가 어거스트 브릴은 아내를 잃은 데다 자동차 사고까지 당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앓고 있다. 같이 살고 있는 딸 미리엄은 남편이 바람이 나 떠난 상태다. 역시 같이 살고 있는 손녀딸 카티야는 남자친구가 아프간 전쟁에서 ISIS에게 붙잡혀 참수당하고, 참수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게 된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브릴이 선택한 방법은 머리 속에서 브릭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브릭은 내전을 겪고 있는 미국의 한 복판으로 내던져지며, 본인의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만들어낸 브릴을 죽이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이 소설은 오스터의 작품군 중에서는 가장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 브릭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해 세 명의 캐릭터는 슬픔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고통을 겪기 이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을 손에 넣은 채, 다시금 세상과 맞설 준비를 한다. 언젠가 또 다른 고통이 다가와 또 넘어지게 되더라도.

어렸을 적 오스터의 작품군을 너무나 열심히 읽어 잠시 떠나 있기로 했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줄은 몰랐다. 작품은 영원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는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빈 자리는 아무도 영원히 채울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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