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판타지의 저력 - [The Bladed Faith] by David Dalglish
군도의 왕국 타네트에 환생신이 지배하는 에버론 왕국의 군세가 공격해 온다. 무적을 자랑하던 타네트의 선단은 어린 왕자 사이러스의 눈 앞에서 침몰하고, 타네트를 수호하는 신들이 직접 강림하지만 황제의 정예부대인 파라곤의 손에 하나하나 살해당하고 만다. 제국의 최고 사령관 메이거스는 사이러스의 눈 앞에서 사이러스의 부모를 살해하고, 사이러스는 포로가 되어 궁전에 갇혀 지내게 된다. 무력하게 지내고 있던 사이러스를 구출한 것은 전 세계에 걸쳐 넓어져 가고 있는 제국의 군세에 홀로 대항하고 있는 유력자 토르다였으며, 그는 사이러스를 훈련시켜 제국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삼고자 한다. 혹독한 훈련을 마친 사이러스는 동료들과 함께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쟁에 나서는데...
데이빗 달글리시는 자체 출판으로 본인의 커리어를 시작하였으며, 첫 번째 시리즈인 [하프 오크] 시리즈가 2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후 유명한 판타지 출판사인 오르빗Orbit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의 또 다른 자체 출판 시리즈인 Shadowdance 시리즈를 오르빗 출판사에서 재출간하며 그는 유명 작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세라핌 Seraphim 3부작, 키퍼즈The Keepers 3부작에 이어 본 시리즈 3부작을 출간했다. [방랑하는 신들The Vagrant Gods]라는 타이틀을 지닌 본 시리즈는 지난 1월 마지막 권인 3부 [살해당한 신성The Slain Divine]을 끝으로 시리즈를 끝마쳤다.
브랜든 샌더슨의 코스미어 작품군과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 시리즈 등 긴 시리즈를 읽으면서 좀 쉬어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 굿리즈에도 계정을 만들면서 책 추천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트렌드에 올라와 있는 데다가, 3권으로 마무리된다고 하여 일단 구입을 했...지만 그게 벌써 2년 전. 다른 책을 이것저것 읽다보니 이 책이 있는 줄 깨달았던 게 최종권 발매 소식을 접하고 나서였다. 킨들을 사면서 아마존을 돌아다니다 재밌어 보이는 책은 일단 쟁여놓는 나쁜 버릇이 생겼는데, 그러다 보니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지금도 너무나 많다. 그 책들이 만약 종이책이었다면...어휴.
아니 근데 벌써 끝났어? 일단 김이 좀 샌 상황에서 어쨌든 사 놨으니... 재미있으면 완결까지 읽어보고 아니면 곧바로 하차하려 했는데 왠걸, 생각보다 재미있어 순식간에 독서를 마쳤다. 위의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 나라를 잃은 왕자가 훈련을 하여 나라를 되찾는다...라는 플롯은 진부하기 그지 없지만, 이미 스무 권이 넘는 작품을 뽑아낸 작가의 필력은 탄탄하고, 무엇보다 설정도 나름 신선했다.
이 세계관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신은 인간의 눈 앞에 직접 현현하며, 직접 인간에게 물리력을 행사한다. 동시에, 인간은 (아직 이 시점에서 전부 밝혀지지 않은 마법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 신을 죽일 수 있으며, 살해당한 신은 사라지지 않고, 신의 속삭임을 듣는 자God-Whisperer라고 하는 일종의 무당을 통해 남아 있는 신성의 편린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신의 속삭임을 듣는 자들은 그 신성의 편린을 받아 스스로의 모습을 신과 닮은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추측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신들 역시 인간들 틈에 이미 몰래 강림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설정은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들며,사실 본 책의 클리셰적인 플롯은 이 설정들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속도감이 있는 문체로, 여러 캐릭터들의 시점을 사용하여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캐릭터들에 대한 애착을 갖게 만든다. 중반에 캐릭터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전개가 있지만, 캐릭터 하나 하나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서 안타까움이 생기게 되는 것은 다중 시점을 사용하면서 나올 수 있는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상기한 장점이 제대로 나타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사이러스의 초반 훈련 파트가 늘어지는 것은 이 책의 아쉬운 점 중 하나이다. 물론 그 와중에 세계관 설명과 다른 캐릭터들의 플롯 전개가 이루어지지만, 사실 빼도 그렇게 아쉬운 내용은 아니었던 터라.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라서...
하지만 후반부의 전개는 초반의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하고, 후반부에 살포되는 떡밥과 엔딩은 다음 권을 기대하게 만든다. 기대되는 3부작의 첫 권으로서 이 책 자체보다는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에서 점수를 많이 주었지만, 이 책 한 권으로도 나쁘지 않은 독서였다. 자신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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