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건지 죽지 못하는 건지 - [My Heart is a Chainsaw] by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슬래셔 장르가 가야 할 한 가지 방향성.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작가로, 호러, 범죄, SF까지 다양한 범위의 작품을 쓰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본작 [My Heart is a Chainsaw]를 시작으로 하는 Indian Lake 3부작, 우리나라에 소개된 [엘크 머리를 한 여자 The Only Good Indians] 등이 있다. 작품군 중 가장 평이 좋은 Indian Lake 3부작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혼혈인 제이드 다니엘스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2부 [Don't Fear the Reaper]를 거쳐 , 3부 [The Angel of Indian Lake]에서 그 끝을 맺는다.
인스타그램에서 책 추천을 훑어보다 강렬한 이미지의 잔인한 일러스트 (시체가 디테일하게 해체된 일러스트였다) 가 내 눈을 사로잡았고, 이런 게 검열없이 인스타그램에 뜨나 싶어서 찾아보니 [Don't Fear the Reaper]에 수록된 장면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시리즈물은 1부부터 읽어야 하는 성격이라 책을 구해 열심히 읽었다. 슬래셔 영화를 즐기지도 않는데다가 슬래셔 장르의 소설은 처음으로 읽는 터라 시간낭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제이드 다니엘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혼혈로,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는 버려진 채 원주민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다. 부모에게 방치되어 삶에 어떤 희망도 가지지 않은 제이드의 유일한 취미이자,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수단은 슬래셔 영화이다. 슬래셔 영화와 현실을 혼동한 채 살아가는 제이드는 곧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지만, 학업 역시 등한시한 그녀는 졸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졸업을 하기 위해, 역사 리포트 대신 슬래셔 영화 분석을 통해 모자란 학점을 채우려고 하는 그녀 주위에 참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그녀는 영화 속으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슬래셔 살인마가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사실 작가의 백그라운드 - 출생, 가정환경이나 인종과 같은 - 만으로 작품 속에 흐르는 성향을 짐작하는 것은 또 다른 prejudice가 아닐까 싶긴 하다. 작가가 가진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아이덴티티는 작품 안에 흐르는 시니컬함, 주인공 제이드가 표현하는 패배 의식, 절망과 포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제이드 역시 원주민 혼혈로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 단순히 작가의 인종으로 이 작품에 흐르는 정서를 단정짓는 것은 실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미국에서는) 성인이니만큼 독립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아이다호의 작은 마을에서, 부모에게도 제대로 케어를 받지 못한 원주민 혼혈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천형과도 같이, 그녀는 이미 세상에 선택받지 못했고,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안식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슬래셔 영화였다. 그 영화 안에서는 인과 관계가 있고 (왜 살인마가 살인극을 일으키는지), 살인마는 (스스로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천벌을 내리지만 그 역시 부당하게 군림하며, 마지막 생존자 소녀 (Final Girl이라는 용어가 쓰인다)는 마침내 스스로를 자각하며 살인마와 맞서고, 결국 승리한다. 슬래셔 영화 속의 세상은 잔인할지언정 확실한 규칙이 있다. 자신은 절대 마지막 생존자가 될 수 없는 조연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런 규칙이 있다고 한다면, 자신의 역할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내용에 대한 언급은 이 쯤으로 줄이고, 그래서 이 책의 첫 반은 제이드가 하는 일상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짜증, 그리고 슬래셔 영화에 대한 레퍼런스가 대부분을 이룬다. 게다가 주워섬기는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들도 있던 터라, 레퍼런스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로는 (그나마 스크림, 13일의 금요일, 할로윈 정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졸릴 뻔하면 사건이 일어나 다행이었지만, 만약 슬래셔물에 대한 이해가 낮다면 초반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좀 있을 것 같다. 절반까지는 책에 정을 붙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제이드의 독백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하게 되면 그때부터 몰입도가 확 올라가게 된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작가의 속도감 있으면서도 디테일한 문체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장면을 전달한다. 슬래셔 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면서도 허황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장점이다.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눈을 떼지도 않고 몇십 페이지를 읽어제꼈다.
물론 작가의 시니컬함은 마지막까지 그 톤을 잃지 않는다. 여타의 슬래셔물처럼 마지막 생존자는 살아남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와 같은 구원은 주어지지 않는다. 현실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빠졌고, 앞으로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의 자그마한 조각은 눈 앞에 던져준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의문이 들지만...없는 것 보다는 낫다. 죽지 못한 자에게 남기는 작가의 유일한 자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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