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의 바람직한 예 - [인버트 Invert] by 아이자와 사코

 

책을 드는 순간 당신은 이미 낚여 있다

비채 (@drviche)의 기대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적인 속편이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그 중에 몇 가지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1. 전편의 소재를 확장시킬 것.

2. 전작을 좋아했던 사람들을 (좋은 의미로) 배신할 수 있을 것.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을 것.

4. 전작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전작으로 유도할 것

어찌 보면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보자기를 이미 작가는 전편에서 펼쳐 버렸다. 그 덕분에 전편은 여러 상을 싹쓸이할 수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후속편을 낸다는 건, 어찌 보면 초필살기로 시합을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3전 2선승제가 아니라 5전 3선승제였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사실 작가에게는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뒀던 것 같다.

오히려 전편의 가장 큰 트릭을 밝혀버린 탓에, 작가가 캐릭터를 운용할 수 있는 영역이 더욱 넓어진 느낌이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조즈카 히스이 도서집]인데, 이 도서집이란 이야기의 처음에 범인이 밝혀지고, 범인의 입장에서 탐정과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는 장르를 이야기한다. 전편을 읽은 독자들은  이 주인공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범인의 시점에서 주인공을 마주하며 1편에서 겪었던 감상을 다시 한 번 체험할 수 있다. 전편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이 감상은 훼손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작품을 읽은 후 전편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사실 가장 감탄했던 테크닉은 이거였다. 전작을 암시하는 순간에조차 의미가 애매하게 서술되어, 1권의 스포일러를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겨냥하는 메타적인 발언 (추리소설 지론이라던지), 앞선 두 에피소드에서 뿌린 떡밥으로 독자를 거하게 낚는 마지막 에피소드라던지... 상업소설 작가로서 아이자와 사코가 가진 테크닉은 정말 얄미로울 정도로 정교하다. 오히려 나에게는 트릭의 참신함보다는 이런 작가로서의 테크닉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스포일러를 피하느라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찌보면 핸디캡일 수 있는 요소를 오히려 강점으로 전환한, 속편의 바람직한 예인 것 같은 작품이다. 전편을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에게는 여전히 이 시리즈가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좋은 작품이고,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아직 세 권밖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언제든 이 시리즈에 입문할 수 있게 되는 좋은 작품이다. 3편도 나왔다고 하니 조만간 읽어볼 예정.

아, 드라마는 아직 끝까지 안 봐서 다행이다. 드라마도 나쁘지 않은데, 책을 읽은 후 보기를 권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걸 어떻게 시각화를 했을까'라고 고민할 만한 대목이 몇 개 있어, 그런 부분들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풀렸는지 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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