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고 탈 수 있는 놀이기구 - [교힐성기담] by 다나카 요시키
서력 9세기. 영화의 극에 달한 대당제국의 말기. 현란한 수도 장안에서 판매되고 있던 불길한 붉은 천은, 사람의 생피로 염색한 것이었다. 일본의 유학승 엔닌이 경험한 교힐성의 괴이에 의협심 넘치는 세 명의 호한과 한 마리의 낙타가 도전한다. 중국사와 무협소설의 매력을 합친, 통쾌한 스펙타클 로망.
다나카 요시키의 대표작으로는 [은하영웅전설], [아르슬란 전기], [창룡전]이 꼽히고, [아르슬란 전기], [창룡전]이 완결된 지금에는 [은하영웅전설]만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커리어 하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창룡전]이야 우리나라에 끝까지 정발되어 국내 독자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무위키에 의해 스포일러가 미리 퍼진 데다 부정적인 서술에 힘입어 국내 발매가 무산된 (것으로 보이는) [아르슬란 전기]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진 것 같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사실 두 작품 다 아쉬움은 있으나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에서는 마무리를 지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소문으로 인해 작가 자체가 국내 독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된 데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중작가로 이름을 알린 (...) 다나카 요시키이지만, 실제로는 꽤 다작을 했고, 작품의 스펙트럼도 넓다. SF/판타지 이외에도 그가 주로 집필하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1. 유럽 역사를 배경으로 한 모험 로망물 (우리나라에는 [월식도의 마물]이 소개되어 있으나, 이 이외에도 많은 수의 작품이 쓰여졌다)
2. 중국 역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시대소설 ([천축열풍록]이 소개되었으나 역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절판되었다)
이 중 본작 [교힐성기담]은 2번 항목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당나라 말기를 무대로 해 역사상의 인물들과 [교힐성]이라는 일본 괴담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편찬 자체는 일본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을 엮었다. 따라서 엄밀히 분류하자면 본작은 역사소설이라기 보다는 시대소설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도 그렇지 않을까 후기에서 밝히기도 하고).
오래된 괴담을 소재로 한 만큼, 클래식한 괴기스러움이 드러나는 것은 본작이 가진 장점이다. 초반의 교힐성 소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고, 실제 역사와 교차하여 캐릭터들을 역사에 슬쩍 얽어넣고, 이야기에 현실미를 더하게 하는 테크닉은 작가가 중국사 덕후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 읽었던, 화목란 ([뮬란]의 모델로 유명한) 설화와 수-고구려 전쟁을 잘 엮었던 [바람이여 만리를 달려라]에서도 이런 현실미를 주는 테크닉은 꽤 효과적이었다.
다만 중국 역사를 소재로 다뤘음에도 이야기 전개 방식은 상기한 1번, [월식도의 마물]과 같은 모험소설과 같이 전개된다. 이야기가 캐릭터들 하나하나와 얽히기 보다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캐릭터들이 투입된 것처럼 느껴지고, 더욱 매력을 발산할 수 있을 캐릭터들이 이야기 전개를 위해 희생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쉽다. [월식도의 마물]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 캐릭터들에게 주어지는 미션과 위기는 극복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내면에서 얽혀 있지는 않다보니 위기가 위기같지 않은, 극적인 맛이 덜한 효과가 발생한다. [은하영웅전설] [아르슬란 전기] [창룡전]과 같은 장편에서야 캐릭터 하나 하나에 서사를 부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 이러한 사건과 시련을 겪으며 캐릭터가 성장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본작과 같은 스탠드얼론 작품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작가가 지닌 단점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 있는 소재, 그리고 캐릭터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고, 재치있는 대사를 계속 쓸 수 있는 것은 다나카 요시키만이 가진 장점이다. 본작은 그런 장점을 잘 발휘한 작품이었다.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범위 내에서 재미있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온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을 계속 써 낼 수 있다는 것이 다나카 요시키라는 작가가 가진 저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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