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파크 탈출기 - [펜넬대륙 진용전] by 타카사토 시이나
폭주하는 조국을 멈춰라! 전 왕녀 펜베르크, 목숨을 걸고 최후의 싸움으로!
수도에서 발생한 구울의 반란을 기회로, 스트라이프 각지에서 싸움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싸움을 멈추고 싶다, 진실을 알고 싶다 - 오빠에게 목숨을 노려지고 있음에도, 펜은 폭주하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녀를 습격하는 슬픈 배신과, 상상하지도 못했던 헤어짐이란 무엇인가. 왕가가 숨겨왔던 경악할 만한 진실이란 무엇인가...!?
소녀와 동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모험담, 여기서 완결!
마침내 다 읽었다. 첫 권 출간일이 2004년이니, 딱 20년만에 다 읽었네.
사실 중간에 팽개친지 몇 년 된 시리즈였다. 어떻게든 1부 7권은 읽었지만 2부 1권에서 중단하고 책장 한 켠에 꽂아두고 잊고 있었다. 결혼하면서 이사를 준비하던 중에 이 책 무더기를 발견하고는, 이 책을 이렇게 내버려 둔 지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창 고단샤 노벨즈를 읽던 시절에 모은 책이고,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마다 교보문고에 주문해서 픽업해오던 책이라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인데 어떻게든 끝은 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뭔가 스스로가 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시금 읽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실물 책으로 모으기 시작했던 시리즈라, 나머지 세 권 역시 실물 책으로 모아 전질을 완성하기로 했다.
1부는 그나마 문고판으로 재판이 되어 나왔으나 2부는 굳이 그럴 가치가 없어서인지 문고판으로도 나오지 않았고 (...) 노벨즈판으로도 재판이 되지 않아 여행을 갈 때마다 북오프에 들러 책이 있는지 찾아봐야 했다. 다행히도 오사카의 북오프에서 두 권은 100엔에 (...) 구할 수 있었으나 마지막 편 (본편)은 찾을 수가 없었고, 아마존 중고물건을 찾아보니 오히려 프리미엄을 붙여 팔고 있었다. 킹받는다는 표현이 뭔지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이렇게 해서까지 읽어야 하는 시리즈일까? 라는 의문이 결제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괴롭혔다.
타카사토 시이나는 [은의 우리를 녹이고]라는 요괴가 나오는 미스터리 작품으로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작가다. 요새는 워낙 데뷔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서 그 위세가 많이 꺾였지만, 메피스토상은 20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개성있는 작가들을 끌어모으는 등용문과도 같았다. 재미만 있으면 시상, 상금은 인세로 대체한다는 이 상에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배출되었는데, 츠지무라 미즈키 같은 대중적인 작가도 있었지만 타카사토 시이나나 (결은 좀 다르지만) 마이조 오타로 같은 양반들도 있었고...마이조 오타로나 사토 유야처럼 취향에 직격하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취향에 전혀 맞지 않는 작가들도 있었고, 타카사토 시이나는 후자의 선두에 서는 작가였다.
사실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왜 이 작품을 계속 읽지 못했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미가 없으니까, 그것도 엄청 재미가 없었으니까 그만 뒀겠지.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좋아하는 것은 왜 이게 좋은 지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지만, 싫은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이야기할 수는 없다. 특히 나는 싫으면 굳이 싫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그냥 던져버리는 성격이라...이번에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왜 이 시리즈가 구린가. 를 설명하면 뭔가 인간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있었다. 헛된 기대였지만...
아무튼, 1권까지는 그렇게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1권부터 구렸다면 애시당초 처음부터 탈출했겠지. 세계관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주인공도 (일러스트에 힘입어) 그렇게 매력이 없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1권에서 슬쩍 드러나기 시작했던 문제가, 다음 권에서부터는 폭발하기 시작하는 게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였다.
일단 문장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고어를 써서 힘든 게 아니라, 작가가 일단 문장을 꼬아놓는다. 탐미적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간단한 단어도 어려운 한자를 써서 표현하고 (단순히 어려운 게 아니라, 일단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한자를 쓰고 거기에 루비를 달아놓는다), 문장을 중간에 부수고, 쓸데없는 표현을 붙이고,피상적으로 표현하고...난 캐릭터 중 하나가 팔이 잘린 줄을 한참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문체 문제는 일본에서도 말이 많았던 듯.
그리고 캐릭터. 일단 이 시리즈에는 악역이라는 게 없다. 악역으로 보이는 캐릭터들도 다 사연이 있고, 이 시리즈는 그 사연을 구구절절 읊어준다. 각 권의 내용은 사실 뜯어보면 그렇게 복잡한 내용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악역처럼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사연팔이가 빈약한 사건 사이를 채우고 페이지를 늘린다.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이런 캐릭터들이 쭉 나열되면 캐릭터를 파는 독자들은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관심없는 캐릭터의 관심없는 사연을 읽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고역이 따로 없다.
게다가 이런 캐릭터들은 죽지도 않는다! 주요 캐릭터 중에 사망자는 없다! 죽는 건 이름없는 조연들 뿐이며, 죽어간 사람들도 지나가듯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식으로 나열될 뿐이다. 불살을 테마로 내세웠다면 제대로 하던지... 악의적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작가의 역량이 부족해서 (...) 이랬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은 찜찜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이 사건에 얽혀들어가지를 않는다. 상기한 쓸데없이 복잡한 문장, 주인공은 팽개치고 캐릭터 세탁에만 몰두하는 플롯, 게다가 불살에 급발진 걸리는 걸 제외하면 다른 문제에는 멍하니 정신을 놓는 주인공. 이 세 가지가 합쳐져 주인공이 이야기에서 제대로 부상하지를 못한다. 왜 주인공에게 다른 캐릭터들이 끌리는지, 세계에서 주인공이 왜 중요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면 주인공을 중심으로 군대가 짜여져 있고, 적들이 알아서 앞에 대령하며, 스스로 무너진다. 테마파크나 잘 못 만든 MMORPG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모험을 하더라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세상이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나마 2부에서는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마침내 주인공이 자기의 자리를 찾고, 그나마 읽을 맛이 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두 권인 12~13권에 가서야 주인공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건 심각한 문제고, 여전히 악역은 없고 문장은 더러우며 엔딩도 납득이 전혀 가지 않지만.
(아무도 읽지 않을 테니 엔딩 스포일러를 하자면, 사실 구울은 인간과 혼혈도 가능한 지성이 있는 종족이었으며, 주인공은 왕과 구울의 혼혈. 차별받고 박해받는 구울이 반란을 일으키고 주인공은 구울과 왕가 간의 사이를 중재시키지만, 일단 반란은 일어난 터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고, 주인공은 모반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형당한다. 물론 사형은 거짓이었고 주인공은 또 여행을 떠난다... 굳이???)
그래도 마지막 두 권은 그나마 읽을 만 했고, 20년이 걸려 마침내 이 시리즈를 해치웠다는 달성감은 생겨 다행이다. 상기한 단점은 현지 독자들도 많이 지적한 내용이지만 저런 점을 오히려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는 모양이고, 타카사토 시이나도 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시리즈를 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니. 이제 나만 이 멀미나는 테마파크에서 잘 떠나면 되는 모양이다. 책은 버리지 않을 예정이다. 언젠가 또 읽으면 감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요새 쓴 글 중에서는 이 글이 결국 제일 길다. 싫어하는 이유도 이렇게 길게 쓸 수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만 해도 나름대로의 수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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