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진 수작 - [제라르 준장의 회상] by 아서 코난 도일

 

후속편 번역이 불발된 것이 아쉽다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난 후, 프랑스의 한 술집 구석에서 노인은 입을 연다. 나폴레옹 시대의 영광의 순간들에 함께 했었다고 주장하는 이 노인은 허세 가득하지만 밉지 않은 말솜씨로, 자신의 모험담을 털어 놓는다 -

아서 코난 도일과 같은 거장도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역사소설가로 기억해주기를 항상 원했으나, 세상이 원했던 것은 셜록 홈즈의 모험담이었다. 홈즈를 죽이는 초강수를 두면서 그는 자신의 다른 작품군에 몰두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원하던 만큼의 상업적, 비평적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개 중 그나마 성공적인 세일즈를 거둔 작품이 본작 [제라르 준장의 회상]과 [제라르 준장의 모험] 이라고 한다. 

사 놓기는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아 몇 년간 책장 속에 잠들어 있었고,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닌지 결국 후속편 발간은 불발된 채 절판이 되고 말았다. 책장을 정리하던 중 다시 발견하고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왠걸, 금방 이야기에 빠져들어 이틀만에 읽어제꼈다.  

뮨하우젠 남작을 연상케하는 제라르 준장의 입담은 2024년에 읽어도 빠져든다. 허세로 가득찼지만 선을 넘지 않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밉지 않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위기에 빠지면서도 계속 뻗대는 모습은 육성으로 터지게 만든다. 19세기 말에 발표된 소설이 이렇게 이야기의 힘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작 자체가 잘 쓰여진 것도 있겠지만, 번역가도 이 시리즈에 애정을 가지고 정성들여 번역한 덕분일 것이다. 

다 읽기도 전에 아마존에서 후속편까지의 합본을 사서 킨들에 넣어두었다. (외국에서는 두 편을 묶어서 파는 경우가 대부분인 모양이다) 기회가 되는 대로 하드커버 판도 구해 볼 예정이다. 북스피어에서는 딱히 재계약을 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는 홈즈 후기 작품군보다는 퀄리티가 훨씬 나은데도 불구하고, 셜록 홈즈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애석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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