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올 수 없는 판데모니움 - [금병매 살인사건] by 야마다 후타로

 

다 읽고 나면 표지도 섬찟하게 느껴진다
[수호전] 시대의 송나라. 부호 서문경은 여러 명의 애첩을 거느리고, 매일같이 육욕에 빠져 있는 중이다.  반금련을 포함한 처첩들은 서문경의 총애를 갈구하며 서로를 질시하고, 그 와중 기이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서문경에게 빌붙어 살고 있는 한량 응백작은 사고로 보이는 이 사건들에 누군가의 의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데...?

    주로 [바질리스크]의 원작자로만 알려졌고, 이제야 인법첩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야마다 후타로. 하지만 무협물 이외에도 그의 작품 영역은 매우 넓은 영역에 걸쳐져 있다. 추리소설도 그가 주력으로 삼던 영역이었고, 이 작품은 그가 낸 추리소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인법첩 시리즈로만 야마다 후타로를 접했고, [야규 인법첩] [마계전생] [야규 쥬베 죽다] 까지만 읽으면 졸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추리소설까지는 굳이 찾아 볼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추리소설가로서의 야마다 후타로는 저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출판사의 용기가 가상하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여러 우연이 얽혀 생각보다는 일찍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왠 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틀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야마다 후타로의 특징이라면 선악을 넘나드는 캐릭터, 야함을 넘어 그로테스크하게까지 느껴지는 끈적한 묘사, 그리고 독자의 허를 찌르는 대담한 상상력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금병매]는 야마다 후타로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재일 것이다. 그 시작을 [수호전]의 스핀오프로 시작한 [금병매]는 피카레스크 소설로서, 육욕에 휩쓸린 캐릭터들의 흥망성쇠를 그려낸 작품이다. 야마다 후타로는 원작에서도 정상이 아닌 캐릭터들을 더욱 더 비틀고, 기괴한 사건에 끼워넣에 한 권의 훌륭한 추리소설로 완성해냈다. 
    흥미롭게 생각됐던 점 중 하나는 이 작품에서의 탐정 캐릭터를, 원작에서도 조연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잡배 '응백작'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서문경에게 붙어 아부를 하면서 먹고 사는 인물이지만 작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진상을 (범인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깨닫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범인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이 캐릭터 역시 진실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해 버린다. 작 중의 모든 캐릭터들은 사람이건 사물이건 진실까지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용하고, 그 결과 스스로의 파멸을 불러온다는 테마가 이 캐릭터를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가운데에는 인외의 존재로까지 묘사되는 육욕의 화신 반금련이 있다. 야마다 후타로의 작풍 중 하나는 에로스를 이성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의 집약체로 묘사한다는 것인데, 그런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캐릭터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반금련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녀는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욕망이 구체화된 존재다. 모든 캐릭터들은 그녀의 유혹에 저항할 수 없고, 그녀를 통해 욕망이 실현되며, 그 결과 빠져나올 수 없는 악의 늪으로 스스로 들어가 파멸을 맞는다. 마치 아귀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 몰락해 가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막상 그녀가 가진 동기는 어찌 보면 순수하고 소박하기 그지 없다. 끔찍한 묘사와 순수한 의도 사이에서 나오는 괴리감이 이 작품의 포인트 중 하나다.
    인법첩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액션과 에로 장면 속에서도 한 두 순간은 독자를 섬칫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특히 마지막 장에 그런 부분들이 많았는데, 짧지 않은 분량 속에서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서사를 쌓아왔던 캐릭터들에게, (마치 마야 유타카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용서 없는 결말을 부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마지막의 reprise까지. 요새 나오는 작품들에도 손색이 없는, 시대를 대표한 엔터테인먼트 대가의 훌륭한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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