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전자동 마리오 - [아이i アイ] by 니시 가나코
니시 카나코의 “아이i”를
읽었다. 니시 가나코는 [사라바]라는 작품으로 2015년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로,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의 번역본이 출판되어 있는 작가다. 본작 [i] 역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되었다.
와일드 소다 아이는 시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에게
입양되어 키워졌다. 풍족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세상은 한없이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자신이 태어난 시리아부터
시작하여 세계의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죽어간 사람들과 자신은 무엇이 다른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선택받은” 것인지
고민하던 아이는 스스로의 죄책감을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사건사고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리스트를 자신의 노트에 적어놓는 것으로 해소하고자
하지만, 그녀가 가진 근원적인 질문 – 존재의 이유에 대한
답이 되지는 못했다.
그런 아이가 나름 세상의 풍파를 겪고, 부모와 친구의 따뜻함을 느끼며
상상을 하고 공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 소설의 주제인 듯하다.
“소용돌이 속에 있는 사람들만이 고통을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흥미본위나 냉정함으로 그들의 기분을 짓밟으려고 하는 건 아니야. 절대로. 그래도, 소용돌이
속에 없어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한다면 된다고 생각해. 그
괴로움이 퍼져서, 그 사실을 몰랐던 누군가 상상할 여지가 된다고 생각해. 소용돌이 속의 괴로움을. 그게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밖에는 없지만, 그리고 실제로 힘은 없을 수도 있지만, 상상하는 건 마음을, 생각을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이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아, 전쟁, 사고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하다못해 성금조차 보내지 않고, 그저 혼자 노트에 죽어간 사람들을 적으며 혼자 고민만 하고 있을 뿐이다.
친구 미나를 제외하면 누구와도 관계를 쌓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듣는단 말인가? 그녀가 원한 건 가만히 있는데도 자신에게 다가와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소설이니만큼, 자신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데도 그 소원을 이루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녀가 유일하게 한 행동은, 2011년 대지진을 겪고 난 후 데모에
나간 것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그 모든 사건들은 그저 노트에 적은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다가, 자신의 몸에 위기가 닥쳐오고 나서야 행동에 나선다. 게다가 나간
데모에서도 열심히 활동에 참석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있던 자신에게 다가와, 조건 없이 자신을 열렬히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결혼을 할 뿐.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고통은 유산이었다. 시험관 시술에서
실패한 아이는 극심한 슬픔에 시달리고, 그 와중에 친구의 원나잇으로 인한 임신은 미나와의 관계를 단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미나의 진심어린 편지에 마음을 돌린 아이는 그녀가 사는 미국으로 날아가 우정을 회복하고 (몇 페이지 안에), “상상의 의미”를 깨닫게 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유산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남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 내에서는 아이는 영원히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병명이 제시되지만 언제든 극복될 수 있는 병이라고, 아직 젊으니 언제든 다음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아이를 갖게 된 친구와 절교할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보기엔 좀 지나치지 않은가. 물론 상대 남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짝사랑하던 남자라는 설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와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저 아이의 머리 속에서만 짧은 짝사랑을 했을 뿐.
너무 속이 좁지 않은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고, 아이는 그저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갈 뿐이고, 머릿속에서만
이랬다 저랬다 했을 뿐이고, 물리적인 변화는 살이 쪘다가 빠졌다라고만 묘사될 뿐이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만) 아이에게 다가와 무한한 사랑을 퍼부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할 사람들을 상상만 하며 괴로워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상상만 열심히 하는 게, 흥미본위나 냉정함으로 소용돌이 속에
있는 사람들을 짓밟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마음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소설의 감상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전자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은 사람들의 고통을 소비할 뿐인 사람의 변명과 자기만족으로 읽힐 것이고, 후자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에 붙은 추천사처럼 잔혹한 현실에 대항하는 힘을 얻을 수도 있겠다. 글쎄, 실제로는 아무런 힘도 없을 것이라고 작가도 인정했지만.
주인공에게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가 수습되고, 업 앤 다운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깨달음까지 찾아오지만, 주인공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혹시 주인공의 신변에 갑자기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주인공의 머리에서 일어나고 끝난다.
마치 누가 플레이한 전자동 마리오를 유투브에서 본 것 같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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