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검이 주는 희망 - [The Kaiju Preservation Society] by John Scalzi
COVID-19이 뉴욕 시를 휩쓰는 가운데, 음식 배달 스타트업의 마케팅 담당자였던 제이미 그레이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가 해고당하고 만다. 판데믹의 한가운데 직업도 없이 위기에 처했던 그에게 나타난 은인 톰 스티븐스. 그는 희귀한 동물을 보호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며 제이미도 같이 일하기를 권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던 제이미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단순한 동물 보호 업무라고 생각했던 업무는 사실 그것보다는 더욱 거대하고, 신비한 것이었는데...
존 스칼지는 한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SF 작가들 중 하나였다. 딱히 SF에 관심이 없었던 2010년대에도 [노인의 전쟁] 시리즈는 꽤 인기를 끌었었고, 시리즈 마지막까지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솜씨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다는 반증이리라. [노인의 전쟁] 시리즈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출간되었고 (그 당시에는 한 명의 작가가 인기를 끌면, 다른 출판사에서도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경쟁적으로 출판하던 시기였다. 그 때가 좋은 시기였을 줄이야!) 나도 신나게 책을 사 모았었으나,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작품을 한 번에 읽어버려서 어느 순간에서는 나가떨어져 버렸던 듯 하다. ([신 엔진]과 [작은 친구들의 행성]은 아직도 읽지 못했다) 그 이후로 한 작가에만 천착하는 습관은 조금 바뀌었던 것 같다.
한 동안 기억 한 구석에 잠들어 있던 이름이었으나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오랜만에 한번...이라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고, 그런 내 기대에 훌륭하게 부응해 준 책이었다. 작가도 후기에서 이 작품은 팝송과 같은 소설이라고 했다. 현대사에 있어 가장 우울했던 판데믹 시기에 쓰여진 책이고, 그에게 있어 좋지 못한 집필 경험을 가져다 준 소설을 폐기하고 나온, 가볍게 쓰여진 작품.
작품은 가볍게 쓰여졌어도 주는 메시지는 가볍게 지나칠 수가 없다. 괴수가 사는 평행 우주가 있고, 그 안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보호협회의 구성원들은 선의로 자신들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무사히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느 소설에서 그렇듯, 스스로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남을 해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희생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것들에 맞서는 방법으로 유머와 우정을 제시한다.
사실 유머와 우정은 존 스칼지가 항상 다뤄왔던 테마였다. [노인의 전쟁]의 페리도, [레드셔츠]의 주인공들도 역경에 부딪혀 의지의 한계를 시험받는 상황에서도 유머는 결코 잃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농담을 던지고, 거기서 힘을 얻어 불가능한 과업을 이겨낸다. 업적은 그 아래 자리잡고 있는 낙천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영웅들이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며, 독자로 하여금 닮고 싶게 한다. 시도때도 없는 농담 때문에 작가를 싫어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내 경우에는 취향 직격이었다.
내가 힘든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기는 쉬우며, 못되게 굴면 세상이 편해지기는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은 그런 순간에도 타인에게 친절하며, 최악의 순간에서도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며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 위기에 빠진 제이미에게 톰은 손을 내밀었고, 이제 제이미는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이렇게 연대는 넓어지고, 판데믹이라는 위기는 사람들의 연대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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