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아너드가 신화를 만났을 때 - [The Slain Divine] by David Dalglish

 

전에도 얘기했지만 상당히 마음에 드는 표지 아트워크 컨셉이다

타넷에 대한 에버론 제국의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환생신 스스로가 타넷의 해변에 강림하여 사투를 벌이는 반란군을 제압하고, 최후의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 섬 전체를 제물로 삼아, 그 재 속에서 다시 환생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란군은 적들 가운데 동료를 발견하고,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모든 것이 천천히 스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사이러스는 "방랑자"의 악랄한 가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전설적인 암살자의 상징 아래 비록 제국을 쓰러트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The Bladed Faith], [The Sapphire Altar]에서 이어지는 [The Vagrant Gods]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을 다 읽었다. 처음부터 트릴로지로 기획된 시리즈의 완결편인 만큼 전편에서 쌓아놓았던 갈등과 복선은 모두 해결되며, 전편의 마지막에서 예고되었던 최후의 전투를 향해 스토리는 성큼성큼 나아간다.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반란군'이라는, 어찌보면 클리셰에 가까운 설정이지만 플롯은 상당히 복잡하게 짜여져 있고, 복선과 반전의 단서는 눈에 띄는 편이지만 언제 회수될 지에 대한 나름의 반전도 존재한다. 두 편을 거치며 애착이 생겨나기 시작한 캐릭터들도 납득할 수 있는 최후를 맞았다. 낭비되는 복선도, 캐릭터도 없이 ([호에로 펜]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보자기를 다 훌륭하게 수습했다. 철저한 계산을 통해 스토리아크를 구성해 놓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위업이다.

(이 책을 읽은) 모두가 꼽는 이 시리즈의 장점은 신화적인 세계관이다. 이 세계에서 신과 인간은 매우 밀접한 존재로, 사람들의 신앙심이 신에게 힘을 주며, 신은 신자들에게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권능을 부여한다.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그 모습을 현신하여 자신의 신앙에 반하는 자들을 직접 공격하기도 한다. 인간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거대한 신이 강림하는 묘사를 그럴싸하게 서술하는 것은 이 시리즈가 가진 장점 중 하나다. 전편에서는 서사가 인간들에게로 집중되어 있어 그런 장면이 적었는데, 이 편에서는 그런 에픽한 장면이 다시 등장해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인공 사이러스의 캐릭터 발전이다. 사이러스의 또 다른 모습, 암살자 "방랑자"는 점점 사이러스를 잠식해 간다. 사이러스는 옳은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방랑자"에게는 그것은 옳은 길이 아니다. "방랑자"에 대한 사람들의 신앙이 점점 커지면서 "방랑자"는 환생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지만, 동시에 사이러스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환생신이 아니게 된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사이러스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엔딩이 주어진 것 같다. 

다만 스토리의 틀을 너무나 탄탄하게 잡아놓은 나머지, 조금 더 보여 줄 수 있는 부분을 그냥 지나친 게 보였다는 것은 아쉬웠다.  클라이맥스를 지나간 후의 스토리는 조금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데, 전편에서의 장절한 전투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조금 아쉬웠다. 또한 마지막 갈등 역시 조금 더 감정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이 안타깝지만...만약 작가가 그런 성격이었다면 이 시리즈는 이 책으로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에픽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추천. 신들이 뛰노는 세상에 [디스아너드]의 캐릭터들을 풀어놓는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국내에서의) 작가의 지명도도 아쉽고, 이 작가의 주력 시리즈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정식 번역이 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 시리즈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다. 원서를 읽을 수 있고,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한 번 일독해보는 것도 좋을 듯. 

결론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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